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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산 밀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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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섬김과 비움의 밀알 : 고허번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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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2-24 14:25 조회5,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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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섬김과 비움의 밀알

 

고허번(Dr. H. A. Codington) 선교사는 1949년에 미국남장로교 한국선교사로 내한하여 1951년 9월 광주제중병원을 재개원하고 결핵환자 치료를 재개하였다. 고허번 원장은 1974년까지 한국에서 결핵환자, 빈민, 정신병자, 윤락여성 등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1974년 방글라데시로 떠나 그곳에서 25년을 더 봉사하고 은퇴하였다.


광주의 성자로 불렸던 고허번 선교사는 성경읽기와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환자치료와 복음전도, 빈민구제에 그의 전 생애를 바쳤다. 그는 하루 일과 중에서 첫 시간을 새벽기도로 양림교회에서 보내고, 그 다음은 곧바로 광주 역으로 가서 대합실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복음을 전하고,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틈틈이 대합실에 있는 대기자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고, 일과 후에는 “배고픈 다리“ , ”공원“...등 여러 곳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또한 고허번은 환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 때에 속는 줄 알면서도 “다음에 오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즉각적으로” 요구를 들어주곤 하였다. 그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말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 주면서 “즉시로“ 요구를 들어주었다.


고허번 선교사는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치료하였을 뿐 아니라 요양생활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무등산 인근에 무등원, 송등원, 동광원 등 20여곳의 각종 크고 작은 요양시설을 건립하여 결핵환자, 윤락녀, 불구폐질자, 정신질환자들의 도왔다.

 

▣ 고허번 선교사의 각종 일화


# 일화 1
고허번 선교사가 결핵병동을 회진하고 있는데 한 환자가 화장실에서 각혈과 함께 피덩어리가 올라와 기도를 막음으로써 환자는 파랗게 변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에 고허번은 그 환자의 입을 벌리고 자신의 입으로 피 덩어리를 뽑아냄으로써 숨을 쉴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국인 의사들과 간호사 그리고 전도사는 자신들이 과연 의료인으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충실한 존재인가? 라는 의문에 쌓이게 되었다. 이러한 고허번의 행동은 병원내의 의사들과 직원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 일화 2
고허번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광주 사회에서 한국인들로부터 백안시당하는 기피인물이었다 할지라도 거부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환자들이 무료로 입원하여 어느 정도 치료를 받은 후 고향 갈 차비를 달라하면 서슴없이 주머니를 털었다. 이 환자는 시내에서 또 다시 방황하면서 술을 접하고 수개월 지나면 또 다시 병원신세를 지게 되곤 하였다. 그리하여 병원의 직원들은 더 이상 무료환자를 받지도 말고 또한 거짓말하는 환자를 강제 퇴원시켜야 한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럴 때마다 고허번은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속아줍시다. 열 사람에게 속아주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좋은 일입니다” 라고 응수함으로써 직원들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 일화 3
고허번의 사택에는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하나 둘이 아니고,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식사 시간에 찾아오면 사모님과 주방의 찬모는 굶었으며 자녀들까지도 굶을 때도 있다.. 그리하여 배고픈 아이들은 주변 양림동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찐 보리쌀을 집어먹기도 함으로써 주위 사람의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어느 날 고허번이 사택 2층에서 자는 데 아래 층 부엌에서 소리가 나서 내려가 보니 밤손님이 와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이유를 물은즉 “너무 배가 고파서...”였다. 이에 고허번은 그 밤손님에게 “지금은 돈이 없으므로 15일 동안 우리 집에 함께 지내자” 라고 달래면서 그 밤손님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고 함께 지내면서 전도하고, 15일 후에 미국에서 온 선교기금에서 얼마를 떼어 주어 보냈다.

 

# 일화 4
고허번은 이렇게 자기를 찾아오는 환자나 손님의 사정을 들으면 곧바로 재정적인 도움을 주거나 자기 집에 기거하면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어느 날 지게에 실려 온 한 고등학생을 진찰하였다. 상당히 거친 생활을 하던 이 학생은 먹지 못한 상태에서 결핵에 감염되어 병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다. 이에 고허번은 그를 받아들여 자신의 집에서 키웠으며 결국 목회자가 되기까지 후원하였다. 이렇게 하여 고허번의 도움으로 목회자가 된 사람이 6명이었다.

 

# 일화 5
어느 날 고허번은 한 환자를 진찰하였다. 아주 잘 생긴 멋쟁이였다. 그는 전국을 유랑하는 악극단의 단원으로서 주색을 멀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된 생활로 인하여 결핵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에 고허번은 그를 돌보아 주었으며, 이 환자는 퇴원 후 악극단에 재가입하지 않고 광주의 고아들을 모아서 친히 어머니 역할을 맡아서 살림하고 공부시켰다. 이 고아들에게는 고허번이 미국의 후원자를 찾아서 연결시켜 주었다. 그리하여 부정기적으로 은행에 가서 후원금을 찾아서 보모의 역할을 맡은 이강민에게 전달하였다. 이 고아들 가운데 상당수는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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